230705
미즈키에게 클라우드샷은 자신을 인간으로 붙들어줄 유일한 인간 상대이고, 동시에 그 유일성, '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며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' 라는 감각이 클라우드샷을 살게 함.
저는 미즈키를 그렇게…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락캐로 생각하지는 않거든요. 그 애는 혼자 내버려 둬도 잘 살 거라고는 생각함.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만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… 설령 그런 것들이 모두 없어진 세계가 도래하더라도 그 애는 그 애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서 잘 살 것 같지 않나요. 설령 인간의 문명이 무너지고 자신조차 인간형을 잃고서 시본이 되더라도 독타를 만나지 않은 상태의 미즈키는 잘 살 것 같아… 그 애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씨앗이어서, 자신이 겪는 모든 미래를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음.
그런데 이제 그 '잘 사는 것'의 형태를 한 가지로 고정시켜 못박는 존재로서 클라우드샷이 등장함. 미즈키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클라우드샷 말고도 수많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지만 미즈키를 '인간으로서' 행복하게 하는 건 클라우드샷이 유일하다고 생각해... 그리고 클라우드샷은 그 유일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미즈키를 인간의 테두리 밖으로 놓아줄 수가 없음.
켈시: 나는 네가 그를 우리가 생각하는 '좋은' 방향으로 이끌고 자신을 재정립하게 할 거라 확신해.
켈시: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고, 어떠한 형태로 살아가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바꾸는 게 과연 옳은 걸까?
켈시: 이런 방법이 자신이 인정하는 더 아름다운 삶의 형태를 추구하기 위해 그 대상을 바꿔버리는 사람과 과연 다를 게 있을까?
켈시: 클라우드샷 박사, 이건 질문이 아니야. 네가 '내 삶의 형태가 더 뛰어나'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알고 싶어.
- 미즈키 오퍼레이터 레코드 <제5종과의 접촉> 중
정말정말진짜진심 좋아하는 미즈키 오퍼레코의 켈시 대사를 보고 가겠습니다… 지금의 클라우드샷은 켈시의 질문 아닌 질문에 당당하게 답할 수 없음. 왜냐하면 지금 자신이 미즈키에게 하는 짓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주관적인 기준을 따라달라고 강요하는 행위 그 자체니까… 이 둘의 관계는 어느 정도는 틀 밖의 존재를 억지로 틀에 쑤셔넣어 규정하려 드는 폭력이기도 함. 다만 거기에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음. 미즈키 록라에서도 여러 가능성을 보여 줬는데 내 손으로 좋아하는 애들에게 하나의 결말만 마련해주고 싶지는 않아서… 결국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격차에 허덕이는 건 클라우드샷도 비슷함. 미즈키와 사소한 일상을 함께 겪으며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, 그리고 단둘만의 관계로 머무르지 않고 미즈키도 클라우드샷도 더 많은 이들과 교류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는 재정체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음.
사실 저는 클라우드샷이 그토록 집착하는 '미즈키의 인간성'이라는 거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. 명일방주가 말하는 인간성은
- 편리하게 자아를 포기하고 집단의 메시지를 따르는 길을 택하는 대신, 때로는 치열히 투쟁하게 될지라도 타인을 독립적인 개인으로써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음.
- 궁극적으로 모든 개체가 그 개체의 고유성을 존중받게 됨.
이런 상태라고 생각해서… 그런 '인간성'이 진정으로 실현되면 역설적으로 상대가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짐. 중요한 것은 상대의 종족 따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상대의 인격(이 단어도 人자를 쓴다는 시점에서 여기에 쓰긴 조금 우습지만) 그 자체가 됨. 제가 겜을 이런 생각으로 하다 보니 언젠가는 클라우드샷도 알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. 모든 지성체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이며 그 안에는 자기 자신과 미즈키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…
곱씹어보는데 나 역시 명일방주가 규정하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 너무 좋다. 개인은 집단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또 집단에 매몰되어서도 안 됨. 개인이 개인으로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집단적 교류가 가능함.